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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삼국시대부터 19세기까지 우리나라 떡의 역사

by 돈세기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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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고 있는 떡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당시 유물을 살펴보면 떡을 쪄내야 하는 기구인 시루가 출토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통으로 전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떡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루떡
팥 시루떡

 

시대별 떡의 역사

청동기 시대

떡의 유래와 다양하게 발달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청동기 사회의 유적인 나진초도패총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분군에서 시루가 출토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떡은 고구려, 신라, 백제가 건국되기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하는 추론이 지배적입니다. 왜냐하면 쌀을 비롯하여 기장, 조, 피, 수수와 같은 곡물들이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석기시대

신석기 유적지로 알려진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을 살펴보면 떡과 관련된 유물이 있습니다.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빻는데 사용되었을만한 원시적 도구인 갈돌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즈음의 신석기인의 생활 유적지에는 대다수 빠짐없이 갈돌이나 절구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및 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 고분과 무문토기시대 유적에서도 대부분 시루가 출토되었습니다. 고구려의 황해도 양수리 벽·추수에 화와 대표적인 유적인 황해도 안악 제3호 고분 벽화에서도 생활속에서 떡 시루에 음식을 찌고 있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떡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및 통일신라시대로 접어 들면서 권농 장려로 인해 농경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쌀이 중심점으로 대표 곡물이 되고 생산량이 급증하게 됨으로써 쌀 외의 곡물을 활용하여 떡을 만드는 것이 일반화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시대 떡이 어떠한 모양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깨물어서 흔적이 선명하게 남는 떡이었다면 흰떡, 인절미, 절편류 등이 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서열전 백결선생의 저서를 보면 떡의 모양은 정확히 기술되지 않았지만 떡메를 사용해서 떡을 치는 소리를 언급한 것을 보면 흰떡이나 인절미 등의 절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정의 뜻을 받들어 세시마 술, 감주, 떡, 밥, 차, 과실 등 여러 가지를 갖추어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는 기록만 보더라도 떡은 그 시대에 제사음식으로도 준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떡은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한층 발달하였습니다. 1765년 편찬된 해동역사를 살펴보면 고려사람들이 밤설기떡인 율고를 만들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1,500여 년 전 원나라의 기록인 거가필용의 기록을 보면 고려율고라는 고려의 떡을 참고해서 떡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세시행사와 제사음식에 주로 사용되었고 상류층에서 즐기던 음식이었는데 별식으로서 백성들 사이에 전파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눈부신 떡 솜씨는 여러 기록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고려 말기이 되면 단자류와 전병 등 더욱더 댜양한 종류의 떡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는

고려 공양왕 때 목은 이색의 저서 목은집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두날이 되면 수단을 하였고 찰수수로 전병을 부쳐 팥소를 싸서 만든 찰전병이 굉장히 맛이 좋았다고 하는 그 시대 생활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고려시대에는 떡이 일반 백성들에게 전파되어 보편화 된 시기였습니다. 반면에 조선시대는 바로 떡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려시대에 비해 떡의 종류와 용도가 점점 다양해졌을 뿐만아니라 조리 및 가공법에도 많은 발달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맛도 향상된 것입니다.

 

떡은 혼례, 빈례, 제례 등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대연회, 소연회, 잔치 등에 꼭 넣어야 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유교가 조선시대의 대표 종교가 되면서 관혼상제 등의 의례와 각종 세시행사이 관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풍속은 현재까지 우리가 이어받고 지켜야 하는 전통과 관습이 되었습니다.

요리 방법을 살펴 보면 조선 초기에는 곡물가루를 증숙하던 방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중기 이후에는 여러가지 곡물을 서로 섞어서 부재료로 활용하는 소를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재료로는 꽃이나 과일, 향신료, 곡류은 물론이고 채소, 버섯, 야생초, 한약재, 과일, 해조류 등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소와 고물, 감미료로는 꿀, 계피, 설탕, 엿기름, 조청, 팥, 밤, 참깨, 대추 등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발색소를 활용해서 떡을 더욱 화려하게 모양을 냈고 맛도 더 좋아졌습니다.

궁중과 반가를 중심으로 해서 떡은 더욱 화력하고 사치스럽게 변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를 살펴보면 떡의 종류만 해도 무려 198가지나 되었다고 합니다. 떡을 만드는 데 활용했던 재료의 가지 수도 95 가지 이상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떡의 기록만 봐도 조선후기에는 사치풍조가 떡에서도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1815년 규합총서에 의하면 백설기, 혼돈병, 복령조화고, 석탄병, 도행병, 상화, 밤조악, 신과병, 토란병, 송기떡, 무떡, 기단가오, 서여향병, 석이병, 대추조악 등 27 종의 떡이름과 함께 떡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었던 것을 보면 그 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우리나라의 떡의 역사는 19 세기말로 접어 들면서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특히 한일합병과 36 년간의 일제의 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과히 격한 사회변화와 아울러 밀려드는 서양의 빵에 속절없이 밀리게 됩니다. 역사와 전통을 이어어던 떡의 역사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떡의 역사에 대한 한마디

지금의 식문화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미래산업까지 우리의 먹거리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떡은 생활속에 녹아있지만 전통음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한 날이되면 꼭 빠지지 않고 준비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만큼 주식이 쌀과 곡물인 우리나라에서 떡은 빠질 수 없는 전통이면서 동시에 식문화의 근간인 셈입니다.

 

 

청동기, 삼국시대부터 19세기까지 우리나라 떡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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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06. 06 적용함